라이프로그


5.18 문학상 공모 (2012.4.23.마감) 공모전


꼬마 다람쥐 얼 저학년 동화


돈 프리먼(Don Freeman)

190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 태어났다. 1940년대부터 어린이 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꼬마 곰 코듀로이》, 《호주머니를 갖고 싶어요》, 《그레고리의 그림자》, 《멋쟁이 사자 댄디라이언》, 《음악가 사마귀 마누엘로》, 《꼬마 다람쥐 얼》 같은 여러 책으로 인기를 얻었고, 《날아라 함께!》로 칼데콧 영예상을 받았다. 1978년 세상을 떠났다. 




줄거리


어느 날 엄마 다람쥐가 꼬마 다람쥐 얼에게 말한다.

"얼. 너도 이젠 혼자서 도토리를 구해 보렴."

얼은 친구 질에게서 쉽게 도토리와 호두까기 기계, 빨간 목도리를 선물받고 기뻐한다. 그러나 엄마는 질을 나무란다. 얼이 스스로 도토리를 구하길 바라는 것이다. 엄마의 뜻을 알리 없는 꼬마 다람쥐 얼은 몇 번 더 엄마에게 야단을 듣고 난 후, 도토리를 찾아 집을 나선다. 부엉이의 안내로 간 참나무 밑에는 황소가 있다. 황소는 얼의 빨간 목도리를 보고 잔뜩 흥분해서 달려들지만 참나무에 뿔을 박게 되고, 그 덕으로 얼은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얻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얼은 드디어 엄마에게 인정을 받는다. 얼은 빨간 목도리를 질에게 돌려준다.




생각해보기


혼자의 힘으로 뭔가를 이뤘을 때의 성취감은 온 몸에 강한 자극제가 된다. 이 경험은 어린이에게'자존감'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얼은 어떤 방법으로 도토리를 얻든, '도토리를 얻는 것' 자체만을 생각한 꼬마 다람쥐였다. 그러나 엄마 다람쥐는 얼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하고 진짜 다람쥐가 될 수 있길 바랐다. 얼은 영문을 모른 채 야단을 들어야 했지만 경험을 통해 깨달았을 것이다. 어떤 과정을 지나 도토리를 얻느냐가 중요하단 것을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애물과 덫이 있다.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다. 크고 작은 위기를 극복하며 자란 어린이들은 앞으로도 극복하며 성장한다. 그렇지 못한 어린이들은 때마다 좌절하는 어른이 된다.

얼은 왜 질에게 빨간 목도리를 돌려줬을까? 경험을 통해 자신을 믿게 됐기 때문이다. 얼은 위기의 상황을 겪으면서 도토리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을 함께 얻은 것이다. 이제 얼에게는 빨간 목도리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참 낯선 일이다. 매번 용기가 필요하다. '꼬마 다람쥐 얼'은 용기를 냈다. 우리의 어린이들은 어떤가? 어린이들이 보고 자라는 현대의 어른들은 어떤 모습인가?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소설/시/좋은 글



생각하기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던 이 책을 난 오늘에야 읽었다. 조금만 더 일찍 용기를 내 이 책을 펼쳤더라면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에 불안한 마음이 덜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다. 반면에 파울로 코엘료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내가 내 마음과 세상에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통했다는 점이 기쁘다. 결코 내가 외길을 걷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 나는 외롭지만 뜻 모르는 외로움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았다는 점, 그리고 '우주의 언어'를 나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는 점이 감격스러웠다. 내가 만물에게 말을 거는 것을 '우주의 언어'라고 명시한 적은 없지만, 그들의 정기에 흠뻑 젖어본 적은 없지만 믿어왔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응답해주리라고. '자아의 신화'의 중요성 또한 분명해졌다.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그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코 한심한 사람의 짓이 아니란 걸 느끼게 해준 이 책, 가슴에 깊이 들어온 책이다.


줄거리가 있는 [책 속 명언]

p.28  "언젠가 들에서 주운 거란다. 네 이름으로 교회에 헌금할 생각이었지. 이것으로 양들을 사거라.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 맘껏 돌아다녀. 우리의 성이 가장 가치 있고, 우리 마을 여자들이 가장 아름답다는 걸 배울 때까지 말이다."
아버지는 축복을 빌어주었다. 소년은 아버지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세상을 떠돌고 싶어한다는 걸. 물과 음식, 그리고 밤마다 몸을 누일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때문에 가슴속에 묻어버려야 했던, 그러나 수십 년 세월에도 한켠에 남아 있는 그 마음을.

p.35  "저는 다른 사람이 내 양들과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양들도 낯선 사람에겐 겁을 먹고요.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양들을 놀라게 하지 않고 곧잘 논단 말이에요. 전 모르겠어요. 어떻게 동물들은 사람의 나이를 그렇게 잘 알아보는지."

p.50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무척 빨리 배우는 것 같아. 아마도 그래서 그토록 빨리 포기하는지도 몰라. 그래, 그런 게 바로 세상이지."
노인이 씁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p.56  이 바람에는 미지의 것들과 황금과 모험, 그리고 피라미드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의 꿈과 땀냄새가 베어 있었다.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말고는. 양들, 양털 가게 주인 딸, 그리고 안달루시아의 평원은 그에게 단지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는 과정들에 불과했다.  

p.75  보석들은 원하면 그 구멍을 다시 빠져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배낭을 꿰맹 생각이 없었다.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남에게 물어봐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걸 이해했던 것이다.
  "나 자신의 결정을 따르기로 약속했었지."

p.76  이 세상은 도둑에게 가진 것을 몽땅 털린 불행한 피해자의 눈으로도 볼 수 있지만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보물을 찾아나선 모험가야."

p.107  물론 양들은 그에게 중요한 다른 한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세상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는 바로 그 언어를 통해 지금까지 가게를 키워 올 수 있었다. 그건 사랑, 열정, 무언가를 바라고 믿는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강등의 언어였다. 이제 탕헤르는 더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이 도시를 정복했듯이 이 세상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119  "삶의 모든 것이 다 지표야."
그는 읽고 있던 잡지를 덮었다. 
"천지만물은 그것이 창조되던 태초에는 온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잊혀져버린 어떤 언어에 의해 만들어졌지. 난 사물들 속에서 바로 이 우주의 언어를 찾는 중이야. 내가 여기 있는 이유로 바로 그 때문이고. 그 우주의 언어를 아록 있는 한 사내, 연금술사를 만나기 위해서지."

p.126  어느 날 밤, 한 낙타몰이꾼이 산티아고에게 말했다. 
"사막은 너무나 거대하고 지평선은 너무 멀리 보여요.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미미한 존재란 걸 느끼게 된다오. 그래서 오래도록 침묵하게 되는 거요." 

p.126  그는 생각했다. 
"난 양들에게 배웠고 크리스털에게도 배웠지. 사막으로부터도 배울 수 있을 거야. 사막에는 시간의 힘과 그로부터 솟아나온 지혜가 느껴져."

p.132  그는 다시 한번 무언의 언어. '우주의 언어'를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p.134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지. 이 지구는 살아있는 존재니까. 정기를 가진 땅덩어리란 얘기야. 우리는 그 정기의 일부이고. 아주 가끔은 우리도 그 정기가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곤 하지.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자네가 그 크리스털 가게에서 일하는 동안 크리스털 그릇들 역시 자네의 성공을 위해 애를 썼을 거라는 거야."

p.182  기사는 계속 청년의 이마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그대는 새들의 비행을 읽어냈는가?"
"새들이 제게 말하려는 것을 읽었을 뿐입니다."
새들은 오아시스를 구하고 싶어했지요. 내일 당신네들은 죽게될 겁니다. 오아시스에는 당신네 보다 더 많은 수의 전사들이 있으니까요."

p.183  "아무리 먼길을 걸어왔다 해도, 절대로 쉬어서는 안 되네. 사막을 사랑해야 하지만, 사막을 완전히 믿어서는 안 돼. 사막은 모든 인간을 시험하기 때문이야. 내딛는 걸음마다 시험에 빠뜨리고, 방심하는 자에게는 죽음을 안겨주지."

p.190  "사랑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악이 아니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악일세."

p.200  "아무 말도 하지 막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 뿐, 사랑에 이유는 없어요."

p.208  "사막 속으로 깊이 잠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
"그대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게. 그대의 마음이 모든 것을 알테니. 그대의 마음은 만물의 정기에서 태어났고, 언젠가는 만물의 정기 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니."

p.212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재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마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p.212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연금술사는 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p.213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보물이 있어. 그런데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만 얘기하지. 그리고는 인생이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아예 침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의 얘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해. 그건 우리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지.'

 마음이 그에게 속삭였다. 


<제10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동화부문 동화부문 수상작


「보름이의 이사」


홍  기  운


“나는 부산 이모네 갔다 왔다아. 해운대 가서 수영도 하고, 어, 회도 먹었다.”
“부산이 뭐가 머냐. 나는 비행기 타고 우리 삼촌 사는 중국까지 갔다 왔는걸.”
동준이랑 해성이 입에서 침이 튀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둘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싸우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보름이는 가운데에 서서 둘이 하는 얘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보름이 넌? 넌 어디 갔다 왔어?”
그냥 자기들끼리 신 나게 떠들면 될걸, 동준이가 보름이 얼굴에 침방울을 튀기며 물었습니다. 
“나? 어, 난…….”
“보름이는 갈 데가 없잖아.”
해성이가 보름이의 대답을 가로챘습니다.  
“보름이 얘네는 친척들도 다 이 동네 살아. 그러니까 방학 때도 아무 데도 안 가. 그지이? 내 말이 맞지이?”
해성이는 보름이가 그렇다고 인정하는 걸 기어이 듣고 말겠다는 듯, 말끝을 찍찍 늘이며 물었습니다. 
“나 집에 간다.”
보름이는 대답 대신 짧은 인사를 콩주머니처럼 휙 던지고 교실 문을 나섰습니다. 개학 첫날부터 기분이 엉망입니다. 
“엄마! 엄마!”
보름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찾습니다. 
“엄마 여기 있어. 학교 벌써 끝난 거야?” 
엄마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마당에서 걸레를 빨면서 대답했습니다. 보름이는 마루에 책가방을 던져 놓고 엄마 옆에 서서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어, 어. 있잖아, 엄마.”
“오랜만에 학교 가니까 좋지? 다른 애들도 다 까마귀가 돼서 왔든? 그래도 너보다 까만 애는 없을걸?”
엄마는 걸레랑 얘기를 하는지 빨래판에 걸레를 비벼 빨며 하고 싶은 말만 합니다. 
“엄마, 우리 이사 가자.”
보름이는 아까 교실을 나오면서부터 학교 운동장을 지나고, 교문을 벗어나 집에 올 때까지 생각했던 이 한마디를 씩씩하게 내뱉었습니다. 
“이사?”
“응, 이사 가. 아주아주 먼 데로 가.”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이사 간대니? 방학 동안 이사 간 친구 있었어?” 
그제야 엄마가 보름이 얼굴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늦여름의 더운 해가, 방학 내 개울가에서 첨벙거리느라 까맣게 그을린 보름이 얼굴에 잘디 잔 땀방울을 맺어 놓았습니다. 
엄마는 손에 든 걸레를 탈탈 털어서 빨랫줄에 널고는, 옆에 걸려 있던 수건을 물에 적셔 보름이의 얼굴을 야무지게 닦아 주었습니다.  
“누가 이사 가는데?”
“아니. 우리가 이사 가자고.”
“갑자기 이사는 왜? 누구랑 싸웠니?”
“아니이. 싸우면 이사 가는 거야? 그냥 이사 가자니까.”
보름이네는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한동네에 삽니다. 게다가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외삼촌과 이모까지 모두 같은 동네 이웃입니다. 가장 가까운 외갓집이 보름이네 옆집이고, 가장 먼 이모네 집도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보름이는 친척은 원래 한동네에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 보니 보름이네처럼 친척이 모두 한동네에 사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방학을 마치고 나니 그 신기한 일이 왠지 좀 창피해졌습니다. 
“아이고, 우리 보름이 벌써 학교 갔다 왔어? 이모한테 뽀뽀.”
보름이네 집에서 가장 먼, 그래도 부산보다는 훨씬 가까운 데 사는 이모가 놀러 왔습니다. 보름이는 괜히 이모까지 미워서 뽀뽀도 해 주지 않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언니, 나 왔어. 보름이 왜 저래?”
“몰라. 학교 갔다 오더니 이사를 가자고 떼를 쓰잖아.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이사? 갑자기 이사는 왜?”
“내가 아니? 그건 뭐야?”
“아, 참. 언니 이거 한번 써 보라고. 전에 왜 내 친구가 화장품 가게 한다고 했잖아.”
보름이는 방 한쪽에 개어 놓은 이불 위로 풀썩 엎어졌습니다. 엄마는 보름이한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이모랑 화장품 얘기만 합니다. 
‘이모한테 이사 가라고 할까?’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모네는 세탁소를 합니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세탁소를 해서 가게 안은 늘 손님들이 맡긴 옷으로 가득합니다. 그 옷을 다 가지고 갈 수 없으니 이모네가 이사를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외삼촌은 보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이 이사를 가면 아이들이 선생님과 떨어져야 하니까 외삼촌도 이사를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과수원을 합니다. 원래는 큰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과수원을 했는데, 할아버지가 밭에서 쓰러지신 뒤로 과일 가게를 하던 작은아버지가 같이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보름이네 아빠는 읍내에 있는 우체국에서 일합니다. 모두 한동네에 살고 있으니 일하는 곳도 한동네입니다. 
“보름아, 한보름. 얘가 왜 이렇게 낮잠을 오래 자? 어서 일어나! 저녁 먹어야지.”
누가 이사를 가는 게 좋을까 생각하던 보름이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엄마는 이사 얘기를 하지 않았고, 보름이는 이사 갈 생각만 했습니다.
‘내일 이사 가야지. 아주아주 먼 데로 갈 거야. 그래서 방학 하면 외갓집도 가고 큰아버지네랑 이모네 집으로 놀러 올 거야.’ 
보름이는 책가방을 챙기면서 내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읍내까지 간 다음, 거기서 더 먼 곳으로 갈 계획을 세우기로 합니다. 가방 안에는 딱지랑 스티커를 담아 둔 플라스틱 통을 넣고, 엄마가 새로 사 준 캐릭터 칫솔과 지난 설날에 이모가 사 준 양말도 넣었습니다. 한 번도 이사를 가 본 적이 없는 보름이의 이삿짐이 그렇게 꾸려졌습니다. 
이사 가는 날 아침, 보름이는 아침밥을 든든히 먹었습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마터면 ‘이사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할 뻔했습니다. 보름이가 이사 가는 날인 것도 모르고 아빠는 출근을 하고, 엄마는 밭에 나갈 준비를 합니다. 
보름이는 쉬는 시간마다 가방을 툭툭 건드려 보았습니다. 점심 급식을 밥 한 톨 남김없이 깨끗이 먹고 우유는 가방 안에 넣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5교시 수업만 끝나면 보름이는 이사를 갑니다. 
학교 주변은 온통 사과밭입니다. 봉지를 씌우지 않아 맨살을 그대로 드러낸 사과는 따스한 햇살을 받아 속살을 알차게 채워 갑니다. 보름이는 버스를 타기 위해 사과 냄새, 흙냄새가 폴폴 날리는 길을 따라 정류장 쪽으로 걸었습니다. 
“보름아, 학교 끝났나?”
과수원에서 큰아버지가 보름이를 불렀습니다.
“네에.”
보름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자라목처럼 슬며시 기어들었습니다. 
“이거 가면서 먹어라. 올해 처음 딴 거다.”
큰아버지가 수건으로 문질러 윤을 낸 사과 한 개를 보름이에게 줍니다. 보름이는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든 사과를 코끝에 대자 흙냄새 대신 큰아버지 냄새가 났습니다. 
“우리 보름이 어디 가나?”
마을 회관 옆 가게에서 장기를 두던 외할아버지가 보름이를 불렀습니다. 
“저기 가요.”
보름이는 일부러 ‘저기’는 작게 말하고 ‘가요’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다행히 외할아버지는 ‘저기’가 어디인지 묻지 않습니다. 
“이리 와 봐라.”
보름이는 외할아버지의 손짓을 따라 쭈뼛쭈뼛 가게 앞으로 갔습니다. 
“너 먹고 싶은 거 하나 가져 와라.”
외할아버지가 보름이 궁둥이를 톡톡 두드리며 가게 안으로 밀었습니다. 보름이는 장기를 둘 줄 모르지만 외할아버지가 이기고 있다는 건 알 것 같았습니다. 보름이는 가게 안에서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거 갖고 집에 가라. 길 조심하고, 차 조심하고. 알았지?” 
외할아버지가 한껏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보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네에.”
보름이는 과자 봉지를 달랑달랑 흔들며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 어여 둬어. 장기 두는 사람 어디 갔나아?” 
지고 있는 가게 주인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여 둬어.’ 하는 소리가 보름이 귀에는 ‘어여 가아.’ 하는 것처럼 들려서 괜히 걸음이 빨라집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보름이는 과자 봉지를 뜯은 다음 과자를 꺼내 손가락에 하나씩 씌웠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과자 모자를 하나씩 벗겨 먹으며 생각했습니다. 
‘이사 가면 방학 때 제일 먼저 외할아버지 집에 놀러 가야지.’
보름이는 엄마, 아빠와 차를 타고 외갓집에 가는 상상을 했습니다. 보름이가 차에서 내리자 외할머니가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와 보름이를 안아 줍니다. 보름이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거의 날마다 봅니다. 어쩔 때에는 하루에 두세 번씩 만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게 싫은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반갑지는 않습니다. 그게 다 한동네에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빨리,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습니다. 
“대보름, 스톱!”
오랜만에 만난 외할머니와 볼을 부비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이모가 보름이를 불러 세웠습니다. 
“대보름, 어디 가는데?”
이모는 보름이를 꼭 ‘대보름’이라고 부릅니다. 한보름의 ‘한’이나 대보름의 ‘대’나 뜻은 같은 거라는데, 대보름은 어쩐지 놀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대보름, 이리 들어 와. 마침 잘됐다.”
보름이는 싫다는 말도 못하고 세탁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탁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 옷 냄새가 한꺼번에 훅 끼쳤습니다.
“이거 부침개거든. 엄마 갖다 드려.”
“네에.”
“이모가 가방에 넣어 줄까? 뒤로 돌아 봐. 쪼그만 게 가방에 뭐가 이렇게 들었니?” 
“그냥 들고 갈게요.”
“그럴래? 잘 들고 가. 가면서 이리저리 흔들지 말고.”
“네에.”
“보름이 왔나?”
이모부가 세탁할 옷을 한 아름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옵니다. 부산이 고향인 고모부의 말투는 어디서도 귀에 쏙 들어 옵니다.
“이모부는 왜 여기 살아요, 부산에 안 살고?”
“야 봐라. 머라카노? 와 여기 사냐꼬? 이모가 좋으니까 여기 살지. 보름이도 여기 살고 이모부도 여기 살고, 이래 모여 사니까 안 좋나?”
보름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여 인사만 하고 세탁소를 나왔습니다. 몇 발짝 걷고 나서 저도 모르게 부침개가 든 종이 가방을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흔들지 말랬지! 집으로 곧장 가라. 금세 깜깜해진다.”
이모가 보름이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습니다. 
‘치, 모여 사는 게 뭐가 좋아.’
보름이는 이모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여 사는 사람은 엄마, 아빠, 보름이 셋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때, 버스 한 대가 막 정류장에 들어서는 게 보였습니다. 
“버스다! 나 저거 타야 되는데.”
보름이는 버스를 보자마자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책가방이 들썩거리면서 플라스틱 통 속에 든 딱지랑 스티커가 제멋대로 뒤섞였습니다. 큰아버지가 주신 사과도 먹다 남은 과자도 가방 속에서 들썩거렸습니다. 손에 든 부침개 가방도 덩달아 요동쳤습니다.
‘이모가 흔들지 말랬는데…….’
보름이는 그래도 계속 뛰었습니다. 버스가 막 떠나려는 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버스는 보름이를 보지 못한 채 누런 흙먼지를 폴폴 날리며 정류장을 벗어났습니다. 
보름이는 갑자기 울고 싶었습니다. 학교에서부터 큰아버지 과수원을 지나고, 마을 회관을 지나고 이모네 세탁소를 지나 온 일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할미 마중 나왔구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 사이에서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습니다. 할머니를 보는 순간 보름이의 눈에 눈물이 꽉 맺혔습니다. 하지만 왜 우는 건지 잘 몰라서, 그리고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앙다물고 꾹 참았습니다.
“우리 보름이 할미랑 집에 가자.”
“응.”
보름이는 이사를 가려던 것도 모두 잊고 정말로 할머니를 마중하려고 버스 정류장에 갔던 것처럼, 할머니 손에 붙들려 얌전히 할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에구, 요 녀석. 흙강아지가 다 됐네. 방에 들어가 있어라. 할미가 금세 밥 차려 줄게.”
보름이는 책가방과 부침개가 든 종이 가방을 마루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아랫목에 깔아 놓은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습니다. 
“나다. 보름이 여기 있다. 그래. 오늘 나 장에 간 거 알고 정류장까지 마중 나왔더라. 예 와서 저녁 먹고 보름이 데려가라.” 
보름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한 상에 둘러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보름이는 아예 베개까지 베고 누워 쿨쿨 잠을 잡니다. 
“얼마나 고단했는지 들어다 뉘어도 모르더라. 그놈, 참. 보름달처럼 자알생겼다. 허허.” 
할아버지가 밥 한 숟가락에 한 번, 반찬 한 젓가락에 한 번씩 보름이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해합니다. 
“어머니, 부침개는 언제 하셨어요? 아주 맛있어요.”
“그거 보름이가 들고 왔더라. 밤톨만 한 녀석이 가방에 뭘 그리 잔뜩 넣어 가지고 다니는지…….”
식구들이 도란거리며 밥을 먹는 사이, 보름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트럭에 이삿짐을 잔뜩 싣고 집을 나서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삿짐 차에는 보름이네 식구 말고도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가족, 외갓집 식구들까지 모두 타고 있었습니다.             

                                              



                





홍  기  운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방송 작가, 잡지 기자를 거쳐 10여 년 간 학습지 편집자로 일한 뒤, ‘어린이책 작가 교실’에서 공부하며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201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장고는 장고다」가 당선되었고, 단편동화 「보름이의 이사」로 제10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남편과 함께 국내외를 여행한 경험을 담아 『대한민국이 좋다』를 냈다.   

<제10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 달팽이 따라잡기 동화부문 수상작


「달팽이 따라잡기」


강  은  령


“야, 같이 가!”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겨우 따라 잡을 만하면 녀석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곤 했다. 저건 내가 알던 달팽이가 아니다. 사뿐사뿐 가볍게 달려가는 뒷모습이 마치 날랜 다람쥐 같다. 
내 이마에는 어느새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줄넘기라도 열심히 해두는 건데. 학원 가방을 든 내 오른팔이 축 늘어졌다. 이미 수업은 시작되었을 터였다. 처음으로 학원을 빼먹었다. 녀석은 도대체 어디까지 날 데려가려는 것일까?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만치 앞서 달리던 달팽이가 문득 뒤돌아서서 손을 흔들었다. 발그스레한 얼굴에 환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녀석은 아까부터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을 연발하며 이십 분이 넘도록 날 끌고 다녔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녀석을 따라나선 걸 후회하며 난 또 무거운 다리를 반사적으로 옮겼다.

마트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진저리를 치며 곧장 주방으로 달려갔다. 고기며 생선, 야채 같은 생식품들의 신선도 때문에 마트는 늘 실내온도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 엄마는 그 냉장고 속 같은 공간에서 일할 때보다 따뜻한 집안으로 들어설 때 몸이 더 떨린다고 했다. 잔뜩 얼어 있던 몸이 겨우 정상기능을 회복하느라고 그런다나.   
엄마는 잠시 앉을 틈도 없이 후다닥 간식을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의 메뉴는 떡볶이였다.  
“형진아, 빨리 와. 어서 먹고 학원 가야지.”
엄마가 서둘러대는 바람에 나도 마음이 급해졌다. 포크로 떡볶이를 두세 개씩 한꺼번에 찍어 허겁지겁 입안에 밀어 넣었다. 엄마가 우유를 한 컵 따라서 내 앞에 밀어놓았다. 시간 단축을 위해 원 샷. 그랬더니 숨이 막힐 정도로 재채기가 연거푸 쏟아져 나왔다.
“자, 이제 어서 양치하고 학원 가. 빨리빨리.”
눈물까지 찔끔거리는 내 등 뒤에 대고 엄마가 성급하게 외쳤다. 엄마는 늘 ‘빨리빨리’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가 먹어 치운 빈 접시와 컵을 들고 엄마는 또 주방으로 달려갔다. 이제부터 내 저녁밥을 지어 놓고 갈비식당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를 돕는 길은 시간에 늦지 않게 빨리 학원으로 사라져 주는 것뿐이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대충 양치질을 하고 나서 학원 가방을 챙겨 들고 집을 나왔다.
달팽이를 만난 건 놀이터 입구에서였다. 녀석은 철쭉나무 울타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내가 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무 잎사귀에서 보물이라도 찾는지 꼼짝 않고 앉아서 뚫어질 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야, 달팽이!”
가방으로 등짝을 후려쳤다. 그때서야 화들짝 놀라며 엉덩이를 엉거주춤 일으킨다. 매사에 반응이 아주 느린 녀석이다.
“달팽이 맞아.”
픽 웃음이 나왔다. 제 별명이 달팽이인 줄은 아나 보다. 근데 뭘 그리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진짜 달팽이잖아?”
녀석이 오히려 어리둥절해했다.
“달팽이 처음 봐?”
“응. 책에서는 많이 봤지만 살아 있는 달팽이는 처음이야.”
“숲속에 가면 아주 많은데.”
“어디?”
“저기 아파트 뒷산.”
그래서 녀석을 따라오게 된 거였다.

꽤 넓은 공터를 지나고 야트막한 언덕을 하나 넘자 갑자기 딴 세상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우선 짙은 초록색 숲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어 시야가 탁 트인 게 좋았다. 굵고 커다란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서 있는 사이로 키 작은 나무들과 수많은 종류의 풀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자라나고 있었다. 공기도 사뭇 달랐다. 나무들 사이로 넘나드는 상쾌한 바람이 실어다 주는 진한 솔향기가 콧속으로 기분 좋게 스며들어 왔다. 
“아래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개울도 있어.” 
녀석이 이끄는 대로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헤치고 오솔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잔풀만 빼곡하게 늘어선 사이로 듬성듬성 바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학교 복도 넓이만 한 개울이 나타났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조금 큰 바위는 굽이쳐 돌아가고 작은 돌들은 여유롭게 뛰어넘으면서 개울물은 끊임없이 아래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은 졸졸졸 노래하며 흐른다더니 그게 아니었다. 돌들을 주의하라고 돌돌 외치며 기운차게 제 갈 길을 헤쳐 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달팽이가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조심조심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도 덩달아 첨벙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쉿!”
녀석이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쳇.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녀석을 뒤쫓아 다녔다. 녀석이 제법 큰 돌멩이 하나를 들어올리자 돌 틈에 숨어 있던 가재 몇 마리가 뿔뿔뿔 기어 나오더니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달팽이가 그중 두 마리를 붙들었고 나도 간신히 한 마리를 잡았다. 돌처럼 작고 단단한 가재였다.
“너 이거 먹을 거야?”
녀석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천만에. 이렇게 작고 깜찍한 가재를 어떻게 먹는담. 누굴 야만인으로 아나?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그만 놔 줘. 너무 오래 잡고 있으면 죽어 버리거든.”
우리는 동시에 가재를 물속에 놓아 주었다. 가재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서는 다시 돌 틈으로 숨어들었다. 잡았다가는 놓아 주고 다시 붙들었다가 놓아 주려니까 마치 가재들이랑 숨바꼭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재미있는 숨바꼭질은 없을 것이다. 
얼마를 그렇게 놀았을까? 마침내 우리는 지쳐서 개울가에 있는 넓적한 바위 위에 네 활개를 펴고 드러누웠다.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하늘에는 양털 같은 흰 구름 몇 덩이가 둥실둥실 떠가고 있었다. 저렇게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또 얼마만인가. 이곳에서는 시간이 아주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느긋해졌다.
옆을 돌아보니 달팽이도 나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한적한 곳에서만 놀아서 그런지 녀석은 좀처럼 서두르는 일도 없고, 어지간해서는 화도 잘 내지 않았다.
아빠도 이런 생활이 그리워서 떠난 것일까? 시를 쓴다는 아빠는 도시의 번잡하고 바쁜 일상을 못견뎌했다. 시골에 있는 친구의 농원으로 간다던 아빠는 벌써 몇 달째 소식이 없었다. 
개울 아래쪽에 있는 소나무 숲 사이로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까만색 바지에 상아색 재킷을 걸쳐 입고 종종 걸음을 치는 사람은 분명 엄마였다. 갈비를 먹는 손님들은 저녁에 몰려들기 때문에 저녁시간에만 아르바이트 해 줄 사람을 찾는다는 말을 반장 아줌마로부터 전해 듣자마자 엄마는 대뜸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트에 일 다니잖우.”
반장 아줌마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유, 그 돈 가지고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요. 아이 학원비도 대야 하고.”
엄마는 사정하다시피 해서 그 일자리를 얻어 냈다. 마트 일이 오후 네 시면 끝나니까 적어도 다섯 시까지는 식당으로 갈 수 있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쯤 가야 하기 때문에 다섯 시까지 식당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네 시 사십 분쯤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그 사이의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엄마는 내 간식을 마련하고 저녁밥을 짓는 데 몽땅 썼다. 그러다 보니 잠시 앉을 틈도 없이 늘 종종거리며 뛰어다녀야만 하는 것이다.
‘가엾은 엄마.’
연방 시계를 들여다보며 버스정류장을 향해 달려가는 엄마가 오늘따라 더 애처로워 보였다. 달팽이도 버스정류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우리 엄마야.”
나직한 목소리로 달팽이에게 일러 주었다. 
“정말?”
녀석은 벌떡 일어나더니 자세를 고쳐 쪼그리고 앉아서 턱을 괴었다. 아까 달팽이를 관찰하던 바로 그 자세였다. 저렇게 집중할 줄 아는 녀석이 어쩌다 도움 반까지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새 학년이 된 지 이 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이승우!”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아직 누가 누군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되던 때여서 아이들은 그저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그때 한 남자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가 작고 바싹 마른 애였다. 
“승우는 이제부터 국어와 수학 시간에는 도움 반에 가서 공부할 거예요. 오늘은 첫날이니까 선생님이 데려다 줄게. 자, 필기도구만 챙겨 가지고 이리 나와.”
그 아이는 말없이 선생님을 따라 갔다.
“쟤 바보 아니야?”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누군가 불쑥 말했다.
“유식한 말로는 학습부진아라고 하지.”
회장인 준모가 아는 체를 했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아이들이 와글와글 떠들어 댔다. 승우를 데려다 주고 오신 선생님이 교탁을 탁탁 쳐서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승우는 공부를 못해서 도움 반에 간 게 아니에요. 다만 여러분과 달리 공부하는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에요. 그렇다고 승우를 놀리거나 하면 안 돼요.”
그 소리는 차라리 하지 않은 것만 못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유독 굼뜬 승우를 달팽이라고 불렀다. 눈치가 없는 건지 지나치게 넉살이 좋은 건지 녀석은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을 아예 상대도 하지 않았다. 국어와 수학 시간이 되면 제가 알아서 도움 반으로 가며 선생님께 꼬박꼬박 인사까지 챙기는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런 녀석을 선생님은 반에서 제일 착한 아이라고 추켜세웠지만, 아이들은 선생님만 자리에 없으면 따돌렸다. 꼭 불러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고, 부르기도 귀찮으면 등짝을 후려치기가 예사였다.
여자애들은 녀석과 짝이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모든 일에 한 템포가 느린 녀석은 일일이 챙겨 주지 않으면 도무지 수업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녀석과 짝이 된다는 것은 녀석의 도우미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녀석 때문에 수업이 지연되면 친구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짝이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 과제물이나 학습지를 바꿔 채점할 때면 녀석의 짝은 일인이역을 해야 하니까 그야말로 손바닥에 땀이 날 지경이었다.
같은 모둠이 되는 것도 싫어했다. 특히 모둠의 점수가 수행평가에 많이 반영되는 과학시간이 되면 녀석과 한 모둠이 된 아이들의 신경은 곤두섰다. 그렇다고 녀석이 멍하니 하는 대로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수업을 열심히 듣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에 속했지만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녀석이 속한 모둠에서는 늘 크고 작은 소동이 일어나고, 뭔가가 깨지거나 엎질러져서 아이들의 원성을 듣는 일이 빈번했다.
지금 달팽이의 모습은 그때와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 때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었다. 새로운 과제를 받을 때마다 보이던 난감한 표정도 아니었다. 호기심에 가득 찬 눈동자가 반짝반짝 광채마저 띄고 있었다. 그 사이에 엄마는 막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릴 때까지 넋 놓고 바라보던 달팽이가 불쑥 말했다.
“좋겠다. 나도 저런 엄마가 있었으면.”
“넌 엄마 없어?”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난 엄마 얼굴도 몰라.”
“그럼 아빠하고만 살아?”
“응.”
“너희 아빠는 뭐 하시는데?”
궁금증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자꾸 물어 보게 된다.
“대학교 선생님이야.”
“야아, 그럼 교수님이야?”
이건 좀 의외다. 달팽이 같은 아이에게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빠가 있다니.
“교수는 아니고. 뭐라더라? 아, 시간강사라고 하는 것 같던데.”
“시간강사?”
“나도 잘 몰라. 이 학교 저 학교 옮겨 다니면서 한두 시간씩 대학생들을 가르치나 봐. 지방으로 갈 때도 많아. 우리 아빠는 늘 한밤중에 들어와서 아침 일찍 나가셔. 일요일은 그동안 밀린 잠 자느라고 온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고. 내가 아빠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일요일 저녁때뿐이야.”
그래서 그랬나? 달팽이가 유독 느린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아시절부터 말 상대도 없이 방치되어 왔다면 나라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녀석이 저렇게 작고 마른 이유도 다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런 것만 같았다.
“그럼, 밥은 누가 해 줘?”
“내가.”
녀석이 손바닥으로 제 가슴을 탁탁 쳤다.
“뭐, 어떻게?”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는 녀석이 갑자기 대단해 보였다. 난 여태 밥 같은 건 할 엄두도 내보지 않았었다. 밥은커녕 간식조차 내 손으로 챙겨 먹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그거 별로 어렵지 않은데. 쌀을 씻어 밥솥에 넣고 물만 부어 주면 전기밥솥이 알아서 다 해 주는걸.”
녀석이 하도 심드렁하게 대꾸해서 내가 꼭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쉬운 밥도 못하는 바보. 난 왜 내 손으로 밥해 먹을 생각을 못했을까? 그랬더라면 엄마가 저리 바쁘게 뛰어다지니 않아도 될 텐데. 아빠와 내가 엄마를 지나치게 의지하고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엄마 혼자 그 모든 짐을 다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결혼 전에 엄마는 전문 산악인이었다고 했다. 특히 암벽 등반을 좋아해서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 산맥 위에 우뚝 서 보고 싶은 게 엄마의 꿈이었다고 했다.
“마트 안도 춥다면서 어떻게 그 추운 곳에 가?”
놀리듯이 말하면 엄마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 빙벽과 마주 서 있을 때는 추운 줄도 몰랐는데 말이야. 나도 내가 이렇게 추위 타는 사람인 줄 몰랐어.”
꿈을 포기해 버려서 더 시리고 추운 걸까? 그 말을 할 때의 엄마의 표정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지금 엄마한테 필요한 건 이런 여유와 휴식이다. 가끔씩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돌돌돌 흐르는 시냇물의 맑은 음향도 듣고, 짙푸른 소나무의 상큼한 향기를 만끽해 보는 것은 엄마의 고단한 삶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게 틀림없었다.
“어? 골무꽃이 피었네!”
달팽이가 숲 가장자리에 난 자잘한 보랏빛 꽃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꽃 이름이 골무꽃이야?”
“응, 꼭 털이 보송보송 난 심장 같지 않아?”
녀석은 신이 나서 숲속을 뛰어다녔다. 나도 녀석을 따라 본격적으로 풀꽃 탐색에 나섰다.
“이건 애기똥풀, 이건 제비꽃, 갈퀴덩굴, 별꽃, 환삼덩굴.”
제멋대로 피어난 잡초 같은데 제각각 이름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녀석은 그 이름들을 거의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도 녀석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숲속을 제집 안방 돌아다니듯 하는 녀석을 바라보며 난 지난번 과학 시간을 떠올렸다.
과학 교과 담당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과학 퀴즈 대회를 열었다. 모둠별 대항으로 우승하는 모둠은 수행평가에서 가산점을 받는 것은 물론 부상으로 컵라면까지 먹을 수 있었다. OX로 대답하는 문제를 풀 때였다. 
<식물의 기공은 잎의 뒷면보다 앞면에 더 많다.>
이 문제에 우리 모둠의 모둠장인 은지는 망설이지도 않고 O를 선택했다. 
“숨을 쉬기 편하려면 당연히 앞면에 있어야지.”
나는 은지를 믿었다. 공부 잘하는 은지가 알아서 하겠지. 그런데 녀석이 은지가 들고 있는 카드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가만있지 못해?”
은지가 녀석의 손등을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녀석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정답은 X였다. 식물의 기공은 앞면보다 뒷면에 더 많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녀석은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녀석을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이해력이 떨어지고 숫자 계산을 잘 못하니까 다른 것도 당연히 못하리라고 섣부른 판단을 했던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고, 자신감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녀석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리와 봐. 여기 달팽이가 있어.”
녀석이 풀숲에서 넓적한 잎 하나를 들추며 소리쳤다. 정말 여기는 달팽이 천국이다. 연녹색 잎새 뒤나 축축한 땅을 덮은 가랑잎 밑, 이끼 낀 돌 틈바구니에 몸을 잔뜩 웅크린 달팽이들이 숨어 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껍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진심 어린 애정으로 불러내 주기 전에는 좀처럼 고개를 내밀 것 같지 않은 여리고 수줍은 달팽이들이.

월요일 첫째 시간과 둘째 시간은 연이어서 과학 수업이 진행된다.
“즐거운 과학 퀴즈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나만의 식물도감 만들기’ 과정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와아 하고 함성을 질렀다. 
은지는 등을 꼿꼿하게 펴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번 준모가 있는 3모둠에게 우승을 빼앗긴 게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꼭 우승을 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듯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신 모둠 깃발에 벌써부터 손을 갖다 대고 있었다.
우리 5모둠은 은지와 정연이, 달팽이와 나. 이렇게 네 명이다. 그 중에서 은지가 공부를 제일 잘한다. 물론 나도 수학은 누구한테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과학은 사실 별로였다. 그래서 퀴즈 시간에는 은지가 우리 모둠을 대표해서 문제들을 풀게 내버려 둔다.
칠판에는 식물 이름을 써 놓은 카드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카드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빙빙 돌 지경이었다. 우리나라에 사는 식물의 종류가 어쩌면 저렇게도 많은지.
“첫 번째 문제, 이건 좀 쉬운 문제입니다. 물속에 사는 식물을 골라 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은지가 모둠 깃발을 들고 달려 나갔다. 정해진 시간은 1분이었다. 은지가 카드 네 장을 떼어 들고 들어왔다. <수련>, <생이 가래>, <붕어마름>, <나사말>. 내가 봐도 제대로 고른 것 같다. 각각 넉 장씩 맞춘 우리 모둠과 2모둠, 3모둠이 재대결을 벌였다. 
다음 문제는 높은 산에 사는 식물을 고르는 문제였다. 이번에도 은지가 달려 나가 <솜다리>와 <두메양귀비>를 뽑아 들고 왔다. 준모도 두 개를 맞추어서 또 다시 3모둠과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칠판의 카드는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남아 있는 것들은 거의가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이름들뿐이었다.
“자, 결승전이니까 이번에는 조금 어려운 문제를 내겠어요. 평소에 좀 더 우리 주변의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문제를 냅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은지를 흘낏 쳐다보았다. 긴장이 되는지 표정이 꽤나 굳어져 있다. 
“이번에도 네가 할 거야?”
슬쩍 은지의 마음을 떠 보았다.
“왜? 네가 나가려고?”
은지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마지막 문제가 떨어졌다.
“지금은 봄이죠. 봄철에 하얀색 꽃을 피우는 풀꽃 이름을 찾아 주세요.”
칠판에 붙어 있는 카드 중 다섯 장만이 문제의 정답이라고 선생님께서 덧붙이셨다. 그러자 은지가 슬그머니 깃발을 내려놓았다. 나는 얼른 깃발을 집어 달팽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너 미쳤어?”
은지가 눈을 부라렸다. 
“나도 우리 모둠이 이기길 바라거든.”
은지와 내가 다투는 사이 녀석은 특유의 느림보 걸음으로 어느새 칠판을 향해 슬금슬금 나아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왈가닥 정연이가 가장 대범했다.
“얘들아, 진정해라.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지기만 해 봐. 네가 다 책임져야 해.”
은지가 씩씩거리며 쏘아붙였다. 이 문제만은 준모도 자신이 없는지 칠판 위쪽에 있는 카드를 한 장씩 훑어보더니 고개만 갸웃거릴 뿐 망설이고 서 있었다.
“어, 이건 아닌데.”
녀석이 어떤 카드를 선택할까 쳐다보고 있던 나는 그만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은지가 날카롭게 외쳤다. 달팽이는 비실비실 앞으로 나가더니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제일 아래쪽에 있는 카드 세 장을 뚝뚝 떼어 들고 들어왔다. 좀 제대로 읽어 보기나 하지. 
“3모둠, 선택한 카드를 들어 보세요.”
3모둠 아이들은 준모가 들고 온 카드를 한 장씩 나누어 들고 기대에 찬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세 장의 카드 중 <별꽃> 하나만이 정답이었다.
“다음, 5모둠!”
선생님과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 모둠에게로 쏠렸다. 은지는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 책상 위에 놓인 카드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와 정연이, 달팽이가 카드를 한 장씩 마지못해 들어올렸다.
“산자고, 바위취, 은방울꽃.” 
선생님께서 우리 모둠이 들고 있는 카드를 또박또박 읽으셨다. 우리는 없는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 개다 정답! 와, 5모둠 정말 대단한데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우리는 어리둥절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만 껌벅이다가  아이들의 박수소리와 함성이 울렸을 때에야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니가 정말 달팽이 맞냐?”
정연이가 녀석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할머니 같은 말투로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우승한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은지가 크게 선심을 썼다.
“날으는 수퍼 달팽이지.”
연방 달팽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녀석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우리는 선생님이 베풀어 주시는 성찬을 기꺼이 받았다. 아이들이 주위로 몰려들었다.
“맛있겠다. 한 입만 줘.”
우승팀을 제외한 나머지 모둠에게는 초코파이 하나씩이 돌아갔지만, 아이들이 정말로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컵라면이었다.
“훠이. 세상에 제일 치사스런 게 남 음식 먹는데 껄떡거리는 거야. 훠이 훠이.”
정연이가 참새 떼 쫓듯 아이들을 쫓아 버렸다. 마침 출출했던 참이라 우리는 컵라면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국물까지 한 방울도 남김없이 깨끗이 먹고 나니까 뿌듯한 포만감이 밀려와 마음마저 넉넉해지는 것 같다. 
달팽이는 아직도 면발을 한 가락씩 들어올려가며 느릿느릿 먹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앞으로 쏟아진다. 머리카락 쓸어 올리랴 젓가락질하랴 제 나름으로는 꽤나 부산했다.
“승우야!”
처음으로 달팽이의 이름을 불렀다. 승우가 나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표정이 꼭 해맑고 순진한 아기 같다. 나는 승우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러자 승우도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런, 우리는 꽤나 잘 통하는 친구가 될 것만 같은걸. 나는 가슴을 활짝 열고 승우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제 막 껍질 밖으로 얼굴을 내민 수줍은 내 달팽이를 향해.  
             

                                              



                





강  은  령
1961년 강원도에서 태어났으며,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서정문학’ 동화부문에서 「한들목동」으로 신인상을, 2012년 단편동화 「달팽이 따라잡기」로 제10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제10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수상작. 청소년소설.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 청소년부문 수상작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


조  규  미



푸르르르르르, 투르르르르르.
검푸른 어둠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허리까지 차오는 수풀이 풀벌레 소리에 맞춰 불안하게 설렁이고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그 소리는 조금씩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더 커지고 있었다. 마치 나를 포위하듯 울려 퍼지는 풀벌레의 전투적인 합창.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린다. 여러 명이 급히 움직이는 불길한 신호였다. 
탕! 
바로 등 뒤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몇 개의 어두운 형체가 어지럽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 다굴이다! 나도 그들을 향해 조준했다. 
탕탕!
그들의 급박한 발소리가 내 심장을 더욱 조여 왔다.
탕! 탕탕탕!
피!
총에 맞았다. 붉은 피가 보였다. 냄새가 날 리 없는데도 나는 피를 볼 때마다 비린내를 느꼈다. 붉은 피가 점점이 번져갔다. 나는 역겨운 비린내라도 맡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굴에 걸리다니. 우리 편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누가 나를 일부러 함정에 빠뜨린 것은 아닐까?
갑자기 경쾌한 음악 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이건 또 무슨 소리?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귀에서 뜯어내듯이 급히 이어폰을 뺐다.
경쾌하고 발랄하다 못해 방정맞은 멜로디가 금연석 36번 내 좌석 아래 가방 속에서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다.
아차, 공원에서 주운 휴대폰!
나는 급히 가방을 뒤졌다. 가방 밑바닥에서 휴대폰을 꺼내 우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듯이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아까 장난삼아 가방에 넣었는데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총에 맞은 충격도 가시지 않았는데 방정맞은 벨소리까지 사람을 잡다니. 등에 식은땀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경호,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PC방 휴게실로 향했다. 
오늘은 수업 대신 봉사 활동을 하는 날이었다. 2학년 아이들 전체가 학교에서 세 정거장 쯤 떨어진 한터공원에 모였다. 중간고사가 끝난 직후라 한터공원은 우리 학교 외에도 여러 학교에서 온 아이들로 붐볐다. 봉사 활동이라고 해봤자 공원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것이 다였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먹은 과자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주운 다음에 봉사 활동을 마쳤다고 키득거렸다.
공원 탐색이 시시해질 무렵 나는 공원 화장실 뒤편에 있는 정자를 발견했다. 정자 안에는 다섯 명의 남학생이 서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교복이었다. 그런데 정자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를 따라온 경호가 뭐하냐는 눈짓을 했다. 나는 경호에게 낮게 속삭였다.
“좀 이상해.”
우리는 화장실 모퉁이에 어정쩡하게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정자 지붕 때문에 그늘이 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겁에 질린 한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아붙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패거리 중 하나가 구석에 몰려 있는 아이의 가방을 빼앗아 뒤지기 시작했다. 가방에 있는 물건들이 몽땅 정자 밖으로 던져졌다. 다른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낄낄거렸다. 이번에는 또 다른 아이가 구석에 몰린 아이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뭔가 나온 모양이었다. 그제야 패거리들은 키득거리며 정자를 빠져나갔다. 
그 아이들이 화장실 반대편의 공원 뒷문 쪽으로 사라지자 구석에 있던 아이가 천천히 가방을 들고 정자에서 나왔다. 그리고 떨어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줍더니 주변을 대충 둘러보고 황급히 사라졌다.
‘그 애가 뭘 빼앗겼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정자 밑 잔디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휴대폰이었다.
“그냥 두고 가자. 잃어버린 줄 알면 찾으러 올 거야.”
나는 경호 말을 듣지 않았다. 기어코 내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댈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일 학교에 가져가 애들한테 보여 주면 반응이 뜨거울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은 가끔 훔친 물건을 가져와 다른 아이들한테 나눠 주면서 무용담을 펼쳤다. 비싼 물건도 아니고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지만 금지된 행동을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단박에 영웅이 되었다. 나도 내일 이 휴대폰을 가지고 가서 생생한 목격담을 이야기할 생각이다. 일명 ‘한터공원 휴대폰 습득 사건’이라고……. 
휴게실의 낮은 칸막이 너머로 지하 PC방의 출입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렸다. 경호의 얼굴이 칸막이 위에 둥둥 떴다. 경호에게 컵라면을 사 오라는 손짓을 했다. 
경호가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 두 개를 들고 휴게실로 들어왔다. 컵라면을 조심조심 내려놓으며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휴대폰 아직도 가지고 있어?”
“응, 가방에 있어.”
휴대폰 생각을 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내일의 영웅은 바로 나, 정진수다.
“어쩌려고?”
“그냥……. 재밌잖아?”
“야, ‘재미잖아’가 사람 잡는 거 몰라?”
경호의 대답에 기어 올라갔던 입꼬리가 내려오지 못하고 굳었다. 재미로 그랬다는 말. 예전에도 한 적이 있다. 그 녀석, 윤 때문이었다. 윤……. 이름이 뭐였더라.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재미로 한 것입니다.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반성문에 쓸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냥 재미로 그랬다고. 
“나, 어제 그 애 소식 들었어.”
“누, 구?”
나는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경호는 내 질문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잘 지내지 못하나 봐. 여기 애들이 그쪽 애들한테 다 퍼뜨렸대.” 
꽤 거리가 있는 곳으로 간 줄 알았는데. 왜 거기까지 소문이 퍼진 걸까. 나는 속으로 윤을 원망했다. 더 멀리, 아주 멀리 가지 그랬어. 어떤 소문도 쫓아오지 못 하는 곳으로……. 
“3분 지났네, 먹자.”
경호가 서둘러 컵라면의 뚜껑을 벗겼다. 나도 뚜껑을 벗기고 허겁지겁 라면 한 줄기를 입안으로 그러넣었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있는 구형 휴대폰이었다. 전원을 켰다. 받지 않은 전화 8통. 전원을 꺼놓기를 잘했다. 뭐하는 녀석인지 사진 한 장 저장된 것이 없었다. 문자도 모두 스팸뿐이었다. 휴대폰 메뉴에 들어가 이것저것 기능을 살펴보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들릴까봐 조마조마했다. 나는 재빠르게 통화 버튼을 누르고 조그맣게 ‘여보세요’ 라고 속삭였다. 수화기 저편에서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기니?”
민기? 아까 그 남자애 이름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나는 손으로 입 주변을 동그랗게 감싸고 이야기했다.
“아, 닌, 데요.”
“누구니?”
“……”
“친구니? 민기 좀 바꿔라.”
“저……, 모, 모르는 사람인데요.”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대답이 내 입에서 나왔다.  
“무슨 소리야? 민기 핸드폰으로 받으면서 민기를 모른다니. 거짓말 하면 못 쓴다. 빨리 바꿔줘.”
“정말이에요. 몰라요.”
“참 나……, 그러면 민기 보고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전해 줘. 꼭 좀 전…….”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종료 버튼을 꾹 눌러 휴대폰을 꺼버렸다.
이 휴대폰의 주인이 민기인가 보다. 아까 공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그 애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가 전화한 것을 보니 집에 아직 안 들어간 모양이고. 
시계를 보니 열 시가 넘었다. 갑자기 그 아이가 왜 아직 집에 안 들어갔는지 궁금해졌다. 설마 지금 또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나는 책상 서랍 속에 휴대폰을 밀어 넣었다. 정자 안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 아이 모습 위로 또 한 명의 아이가 겹쳐졌다. 윤이었다. 윤의 겁에 질린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PC방에서 경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전학 간 학교에서 잘 지내지 못하나 봐. 여기 애들이 그쪽 애들한테 다 퍼뜨렸대.’
학교 화장실이었다. 그 애의 머리카락은 푹 젖어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을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보던 모습,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 눈빛이 잠시 뭐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괜히 화가 났다. 그리고 가슴 한편이 서늘했다.  
윤은 어렸을 적부터 알던 사이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윤의 집은 우리 집 맞은편 동이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로 진학한다. 그래서 누가 어느 동에 살고 누구누구가 같은 반인지 뻔히 알 정도다. 올 초 2학년이 되어 학급을 배정받고 교실에서 그 애를 발견했을 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특별히 반갑지도,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그 애와 함께 축구도 하고 놀이터에서도 많이 놀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애와 말을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 애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뿐 아니라 아무도 그 애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애는 점점 그림자가 되어 갔다. 말도 없고 웃음도 없고 표정도 없는 그림자. 
그림자와 놀면 그림자가 된다. 그래서 아무도 그림자와 놀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냥 그것이 아이들 사이의 규칙이었다. 학교에 들어갈 때 운동화를 실내화로 갈아 신듯이. 
윤이 그냥 그림자에 머물렀다면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림자가 밀고자가 되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 그림자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지만 밀고자에게는 말을 걸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비를 걸었다. 
5월답지 않게 유난히 더웠던 날이다. 후덥지근한 교실 공기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신경줄은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날 학급에서 도난 사건이 있었다. 은수라는 여자 아이의 지갑이 없어진 것이다.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속한 패거리 중의 한 아이였다. 우리는 비밀을 단단히 지키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비밀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 패거리 말고 다른 아이들이 도난 사건의 범인을 알게 되었고 담임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는 담임과 면담을 했고 벌점을 받았다. 일이 그렇게 끝났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했다. 지목된 아이는 자신을 지목한 아이, 밀고자를 찾기 시작했다. 
“네가 말했어?”
“내가 미쳤어? 그 돈으로 나도 먹었는데. 네가 나한테 말할 때 들은 애 없어?”
“들은 애? 글쎄,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것 같은데…….”
“혹시 쟤가 들은 거 아니야?”
“쟤? 그림자?”
그제야 아이들은 그림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밀고자가 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은 곧 밀고자를 단죄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푹. 손을 뻗어 베개를 잡아 얼굴 위에 덮었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다. 더 이상…….

이마에 시멘트벽의 차갑고 거친 알갱이가 느껴졌다. 코끝으로 시멘트 냄새가 훅 들어왔다. 숨을 죽이고 벽 건너편의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라도 있으면 바로 공격해야 한다. 온몸의 근육에 긴장을 불어넣는 순간 갑자기 어제의 상처가 쓰라렸다.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벽 건너편으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재빨리 공격했다. 탕! 그리고 한두 발짝 떼었을까. 또 다른 그림자가 보였다. 다시 공격, 탕! 이번에는 새로운 문이 나타났다, 발로 힘껏 차고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공격. 
그림자가 보이면 공격하고 새로운 문이 나타나면 부수고. 마치 기계처럼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다 문득 의문이 든다. 지금 몇 층이나 올라온 거지? 왜 올라가는 거지? 몸은 움직이면서도 머릿속은 자꾸만 묻고 있다. 왜 올라가는 거냐고? 아, 맞아! 인질, 인질을 구해야지. 맨 처음에 받았던 미션이 생각났다. 건물 꼭대기 마지막 방에 있는 인질을 구하라!
또다시 기계처럼 돌진한다. 쏘고, 차고, 올라가고, 쏘고, 차고, 올라가고. 드디어 마지막 방의 문이 나타났다. 그래 다 왔어. 방문을 힘껏 찼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미션 실패. 인질은 이미 죽었다. 

인질이 죽었다고? 누군데? 인질이 누군데? 두려움에 떠는 누군가의 얼굴이 내 시야에 가득 찼다. 어? 너는 윤? 윤이야? 
윤이 겁에 질린 얼굴로 화장실 가운데 서 있다. 누군가 화장실 문을 막아섰다. 지갑을 훔친 아이가 윤 앞에 섰다. 그리고 윤의 어깨를 세게 밀치며 물었다.
“네가 꼰질렀지?”
윤이 비틀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대답했다. 
“아, 아니야.”
한 아이가 수돗물을 틀었다. 콸콸콸콸. 조용한 화장실 안이 물소리로 가득 찼다. 그 아이는 작은 생수병에 물을 담기 시작했다. 물이 가득 찬 생수병을 들고 그 아이는 윤 앞으로 다가왔다. 
“너는 벌을 받아야 해.”
그 아이는 윤의 머리 위에 생수병을 들어 조금씩 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물이 윤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 안경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렸다. 교복 와이셔츠 안쪽으로 물이 흘러들어갔다. 윤은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킥킥거리고 웃었다. 생수병이 어느새 텅 비었다.
드르륵드르륵. 누군가 화장실 문 옆에 매달려 있는 휴지를 풀었다. 
“크크큭, 야, 닦아 주자, 닦아 줘.”
아이들은 휴지로 윤의 얼굴과 옷을 닦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의 얼굴에 물 묻은 휴지가 너덜너덜 붙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더 크게 키득거렸다. 그리고 휴지를 풀어 윤의 몸에 빙빙 둘렀다. 너덜거리는 휴지에 둘둘 말린 윤은 마치 미라 같았다. 윤은 자신의 몸에 매달린 휴지를 떼어버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젖은 휴지들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화장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지 덜컹거렸다. 뭐야. 왜 잠겼어? 밖에 있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화장실 문밖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야, 너 각오해. 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윤을 화장실에 남겨 놓고 아이들이 하나둘 화장실을 빠져 나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화장실문이 없어지고 시멘트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 문이 어디로 갔지?
나는 당황했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화장실을 빠져 나갔는데 나만 빠져 나가지 못하다니. 뒤에서 윤이 나를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시멘트벽만 더듬는데 다시 왼쪽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으윽……. 나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몸을 웅크렸다. 웅크린 채 바닥을 뒹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배가 아프지도 않고 시멘트벽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눈을 떴다. 내 방 창문이 보였다. 창문에 아파트 단지 안의 가로등 불빛이 비쳤다. 덥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이상한 꿈이었다. 모든 것이 짬뽕처럼 섞여 있는 꿈.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한줄기 바람이 들어왔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싶은데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아까 잠들기 전에 스탠드 불이 켜 있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끈 것 같다. 시계를 보았다. 새벽 네 시 반. 겨우 몸을 일으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제법 서늘한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윤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다. 그 얼굴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담임의 종례가 끝났다. 아침에 넣어 가지고 온 휴대폰을 가방에서 꺼냈다. 손에 잡히는 감촉이 낯설었다. 그 후에 전화가 또 왔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을 켰다. 
전화가, 와 있었다. 어젯밤 내가 전원을 끈 이후로 스물한 통. 징그러울 정도로 많이 와 있었다. 그리고 음성 메시지가 두 개 있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비밀번호 모르는데……. 0을 네 번 눌렀다. 아니다. 뭐지? 숫자 네 자리가 이렇게 궁금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원래 휴대폰 비밀번호는 새로 고치지 않는 한 자기 번호 뒷자리 네 자릿수던데. 엄마 것도, 아빠 것도, 지금은 엄마가 압수했지만 예전의 내 휴대폰도 그랬다. 메뉴를 눌러 자기 번호 확인을 했다. 끝자리가 7942. 7942를 눌렀다. 

두 개의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 

찰칵, 신호음과 함께 음성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민기야, 어디니? 왜 집에 안 들어오니? 무슨 일 있니? 혹시 나쁜 일 있는 거 아니지? 저, 저기 말야, 무슨 일 있어도 엄마가 다 이해하니까 빨리 들어와. 와서 이야기해. 응? 민기야……

어제 그 아줌마다. 나랑 통화할 때는 목소리가 앙칼지더니 메시지 속의 목소리는 다 죽어갔다. 메시지가 녹음된 시각을 보니 3시 20분이었다. 민기라는 자식. 그 시간까지 안 들어갔나 보네. 
아이들한테 ‘한터공원 휴대폰 습득 사건’을 떠벌리려던 시도는 그 아줌마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 때문에 어그러졌다. 음성 메시지를 듣고 난 후 다른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왠지 그 아줌마가 윤의 엄마처럼 생겼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아무 상관도 없는 두 사람인데……. 그럼에도 자꾸만 귓가에 그 아줌마의 목소리가 왱왱거렸다. 그리고 빨개진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의 엄마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두 번째 음성 메시지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오늘 점심시간 즈음에 온 메시지였다.

새끼, 너 왜 오늘 학교 안 왔어? 니네 엄마 오늘 학교 왜 온 거야? 씨발, 어디 숨은 거야. 너 입만 열어 봐. 알지?

메시지를 듣는 순간 심장을 그물 같은 것으로 옥죄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한터공원에서 민기라는 아이를 위협하던 그 패거리? 아니면 또 다른 누구? 내게 하는 소리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 음성의 주인이 뒤에서 다가와 금방이라도 내 어깨를 움켜쥘 것만 같았다. 
휴대폰 위치 추적이라도 해서 나를 찾아오면 어쩌지? 내 멱살을 잡고 민기 어디 있냐고 다그치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차라리 휴대폰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가다가 아무 휴지통에나 넣어 버리면 나하고는 끝! 
그러자니 왠지 민기라는 아이가 걸렸다. 널 찾으려고 벼르는 애들이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경고해 줘야 하는 건 아닐까. 에이, 그건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야. 나랑 상관없다구. 내가 그 애 휴대폰을 가지고 온거랑 그 애가 집에 안 들어간거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잖아. 아, 그리고 내가 휴대폰을 그냥 주운 거지. 뭐 빼앗기라도 했나.
어떻게 할지 경호에게 물어 볼까? 안 돼. 짜식이 또 왜 자기 말을 안 들었냐며 거들먹거릴 게 분명하다. 그럼 엄마에게? 아니, 절대 안 된다. 5월에 있었던 사건 이후로 이제야 겨우 엄마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중인데 다시 기어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카맣게 탄 냄비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난다. 
“정말이야?”
“…….”
“내 아들이 그런 짓을 할 줄 몰랐다. 모르는 아이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이 그러면 너라도 나서서 감싸줘야지. 어떻게 똑같이 그런 짓을 하니?”
지난 5월,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엄마는 충격을 받았다. 뛰어나지는 못해도 그만하면 착한 아들이라 믿었던 나에게 발등을 찍혔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남의 일에 미주알고주알 참견하기 좋아하는 오지랖 여사가 삼일 동안 집 밖에 나가지도 않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걸핏하면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감싸 쥐고 이런저런 훈계를 했다. 말을 하다 엄마는 울먹이기도 하고 손을 너무 꼭 쥐어 내 손에 손톱자국을 내기도 했다. 
나는 오른손을 꽉 쥐었다. 네 개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덥석 집어 들었다.
“너, 휴대폰 생겼어?” 
언제 왔는지 옆 반 태진이가 옆에 서있었다. 태진이는 원래 우리 반이었는데 윤과의 사건 이후 다른 반으로 옮겨갔다. 덩치가 큰 태진이는 머리까지 덥수룩하게 길러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내꺼 아냐.”
나는 태진이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 가방에 넣었다. 태진이랑 말씨름할 시간 없다. 벌떡 일어나 교실 문을 나서는데 태진이가 따라왔다. 
“야, 어디가? 농구 안 해?”
못 들은 척하고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태진이는 집요하게 쫓아왔다. 
“어디 가는데? 그 휴대폰 훔친 거냐?”
“…….”
“새끼, 훔친 거구나.”
태진이가 다 안다는 듯이 느물거리며 말했다. 
“훔친 거 아니고 주운 거야.”
“주워? 어디서?”
“몰라도 돼.”
“팔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태진이가 내 어깨를 제 팔꿈치로 툭 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입 안에서 간질간질한 것 같았다.
“너, 그 이야기 들었어?”
“뭐?”
“밀고자 자식 말야. 그 자식 전학 간 학교에서도 왕따래.”
“…….”
“정말 대단하지 않냐?”
“뭐가?”
“뭐긴 뭐야? 우리의 파워 말야. 내가 아는 애가 그 학교에 다니거든. 내가 걔한테 정보 좀 줬지. 그랬더니 바로 쫙 퍼지네. 전학 간다고 별 수 있어? 한번 밀고자는 영원한 밀고자! 우리가 걔 때문에 얼마나 귀찮았냐?” 
태진이는 자신의 능력에 새삼 감탄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늘 보던 표정, 늘 보던 몸짓인데, 이상했다. 태진이 얼굴을 한 대 쳐 주고 싶었다.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걔가 밀고자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잖아.”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의 단결력과 정보력, 또 뭐 있지? 암튼 그런 게 대단하다는 거지.” 
평소 같으면 태진이의 허세에 같이 웃었을 텐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대단하긴 개뿔…….”
“야, 너 왜 갑자기 헛소리야? 우리의 맹세 잊었어?”
태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불만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가 근육을 실룩였다.
“너, 걔랑 놀더니 이상한 소리 한다?”
“걔?”
“그래, 걔.”
경호를 말하는 것 같다. 태진이는 내가 경호와 함께 노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가 열린 후 우리 5인방은 흩어졌다. 그나마 폭력 가담 수위가 낮았던 내가 반에 남았고 다른 아이들은 다른 반으로 옮겼다. 피해자인 윤은 전학을 갔다. 윤의 선택이었다. 
다른 반으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나를 뺀 다른 아이들은 끈끈하게 뭉쳐 다녔다. 나도 처음에는 따라 다녔지만 점점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다. 대신 우리 반 경호와 함께 다니는 시간이 늘었다.
“너 요즘 맘에 안 들어.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느끼는 거야.”
태진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막아섰다.
“농구장으로 가자. 애들이 너 기다리고 있어.”
“안 돼.”
“왜?”
“할 일이 있어. 급해.”
나는 태진이를 밀치고 뛰기 시작했다. 
“야! 너 가만 안 둬. 공원 농구장으로 와.”
태진이의 성난 목소리가 뒤통수에 꽂혔다. 
공원 농구장은 내가 사는 아파트 옆의 작은 공원에 딸린 농구장을 말한다. 우리는 단지 농구를 하기 위해서 만날 때는 학교 농구장에서 만났고, 농구 외에 무언가 다른 일을 할 때는 공원 농구장에서 만났다. 
원래 그 공원은 야트막한 동산이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동산 때문에 우리 아파트가 이렇게 다닥다닥 지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정도만 있었는데 몇 년 전 헬스 기구들이 생기고 조그만 배드민턴장과 농구대도 생기면서 공원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공원 옆길은 아파트 뒷문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그 길을 이용했다. 나와 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집에 가려면 그 앞을 지나야 한다. 태진이랑 아이들이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면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겠지. 
교문을 빠져나오자 길 건너편에 있는 휴지통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학교 앞 길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사람이 뜸한 곳에 가서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걸었다. 십여 분쯤 걷다 보니 놀이터가 보였다. 저기에다 두고 오면 되겠다 싶어 놀이터로 향하는데 문자가 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전화도 씹고 연락도 안 해? 너 지금 맞장 뜨겠다 이 말이지? 어제 그 장소로 나와. 아주 발라버릴 테니까. 
아, 어떡하나. 민기라는 애, 얘들한테 걸리면 그때는 어제처럼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어제 그 장소라면 한터공원을 말하는 것일 텐데 설마 이런 문자 보낸 거 모르고 걔네 찾아가지는 않겠지. 휴대폰을 놀이터에 두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놀이터 안을 둘러보았다. 일고여덟 살 되어 보이는 아이들 셋이 그네를 타고 있고 놀이터 안쪽에 있는 미끄럼틀에서 어떤 아줌마가 꼬마아이와 놀아 주고 있었다. 그들 외에 다른 사람은 눈에 띠지 않았다. 나는 벤치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살며시 휴대폰을 꺼냈다. 
그래, 여기 두고 가자.
나는 벤치 위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누군가 앉아 있다가 깜빡 잊고 두고 간 것처럼 보이겠지. 그런데 쉽게 일어나지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 이 휴대폰이랑 정이 든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우두커니 앉아 그네를 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쟤네들은 고민도 없고 걱정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겠지? 10월의 햇살이 그네와 벤치에 비껴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도 딱 이런 느낌이었다. 아파트 뒷문으로 들어가는 길에 공원의 무성한 나무 그림자가 비스듬히 떨어지던 날. 
우리 5인방은 이미 작전을 짜 놓았다. 윤이 집에 올 때쯤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 애를 잡자는 계획이었다. 길목에서 바로 잡아채어 공원으로 끌고 올라가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나는 그날 아이들을 따라 공원에 갔다가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빠져나왔다. 
거짓으로 아픈 척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로 아팠다. 화장실 사건이 있은 후 남은 수업시간 내내 배 한쪽이 결리는 것 같더니 공원까지 가는 동안 점점 심해졌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 얼굴은 허옇게 뜨고 식은땀까지 흘렀다. 아이들도 평소와는 다른 내 얼굴을 보더니 별말 않고 보내줬다.
급히 공원에서 내려가는데 저만치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터덕터덕 걸어오는 윤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 아직도 젖어 있는 바짓단과 교복 와이셔츠, 누군가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잔뜩 웅크린 어깨. 평소의 단정하고 깨끗한 매무새와는 너무도 달랐다.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윤은 몇 걸음 앞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을 알고 흘낏 쳐다보았다. 나는 그 애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윤은 내가 자기 방향으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윤을 붙잡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너, 그 길로 가지 마. 
내가 망설이는 사이 윤과 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 그 길로 가지 마. 애들이 너 기다리고 있어. 너를 끌고 저 위로 올라갈 거야. 아까 보다 더한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그러니까 가지 마.
하지만 윤이 내 곁을 그대로 지나갈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걸음을 지나쳐서 가는데 갑자기 윤이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수야.”
나는 돌이 된 듯 그 자리에 멈췄다. 뒤돌아 봐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애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수야, 나 일러바친 적 없어. 너 나 알잖아. 나 그런 애 아니라는 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네가 말 좀 해 줘. 네 말이라면 믿을 거야. 응?”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 요동쳤다. 
윤……, 윤재야, 그 길로 가지 마.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 
윤재. 사실 나는 그 애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은 게 아니라 잊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 이름을 부르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공원 입구 쪽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윤이 오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급히 다시 몸을 돌렸다.
진수야. 
뒤에서 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고는 집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그 후로 나는 윤을 보지 못했다. 윤은 그날 이후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코뼈가 내려앉았다는 둥, 다리가 부러졌다는 둥 아이들이 이런 저런 소리를 했지만 떠도는 이야기였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코피가 나고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었지만 소문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단지 그 사건만이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울분이 겹쳐서 생긴 마음의 병이라고 했다. 

햇빛이 조금 물러갔다. 그네를 타고 놀던 아이들이 어느새 시소를 타며 놀고 있었고 아까 그 아줌마와 꼬마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정말 일어서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발신번호 제한’이라는 글자가 떠있었다.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전화를 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마 민기 엄마이거나 민기를 쫓아다니는 무리든가 둘 중 하나겠지. 나는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휴대폰은 몇 번 더 울리더니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음성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음성 메시지를 확인했다.  

저는 그 휴대폰의 주인이에요. 제가 휴대폰을 잃어버렸거든요. 공중전화라 문자도 못 남기고 전화도 못 받아요. 그니까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한터공원에 갖다 놔 주세요. 한터공원 정자 밑, 아시죠? 휴대폰이 있던 자리……. 제가 지금 좀 힘든 상황이거든요. 한터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제발 도와주세요. 

민기였다. 민기가 자신의 휴대폰을 찾고 있다. 휴대폰을 찾으러 한터공원에 가려고 한다. 갑자기 마음과 몸이 한꺼번에 덜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지금 한터공원에 간다고? 미친 거 아냐? 나는 휴대폰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치 민기에게 말하듯이.
“멍청아, 거, 거기는 안 돼. 한터공원은 안 된다구. 어제 너를 괴롭혔던 애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어. 섣불리 거기 갔다가는 그 애들한테 당한다구.”
하지만 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민기는 모를 것이다. 그 메시지를 본 사람은 나니까.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 지금이라도 한터공원에 가야겠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가방이 출렁거렸다. 민기한테 나를 누구라고 설명해야 할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에이 모르겠다, 언제는 깊이 생각했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민기의 휴대폰을 교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햇볕에 데워져 따스해진 휴대폰이 가슴 한켠에서 같이 뛰기 시작했다.  

                



조  규  미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어린이책 작가 교실’에서 동화를 공부했으며, 2012년 「음성 메시지가 있습니다」로 제10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했다.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 저학년 동화

글. 심스 태백

뉴욕타임스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심스 태백은 현재 시각예술학교와 시러큐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아트 디렉터·그래픽 디자이너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35편이 넘는 아동 도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1년 칼데콧 상을 수상한 《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와 《누가 음매~ 그랬니?》《어유, 시끄러워!》 등의 그림책이 있다.

옮김. 김정희

성균관대학교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책 기획과 편집 일을 하고 있다. 심스 태백의 그림책《요셉의 작고 낡은 오버코트가...?》를 우리말로 옮겼다.


줄거리

요셉에게는 오래된 오버코트가 있다. 그래서 요셉은 낡은 오버코트를 재킷으로 만들어 입는다. 세월이 흘러 재킷도 낡자, 이번에는 조끼로, 그다음은 목도리, 넥타이, 손수건, 단추로 만들어 입는다. 어느날 요셉은 단추를 잃어버린다. 이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요셉은 어떻게 생활할지 고민을 한다. 고민 끝에 요셉은 자신의 오래된 오버코트가 단추가 되어 사라지기까지의 일을 그림책을 만든다. "이것 봐. 이젠 아무 것도 없지만 이렇게 또 만들고 있잖아. 바로 이 그림책을!"


생각하기

굳이 말하자면 이 그림책의 주제는 '근검', '절약' 일 것이다. 물건을 아끼고 응용해서 사용하다보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고, 때로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는 것. 이것을 경험하는 일은 특별하고 뜻 깊다. 모든 것이 풍족한 이 시대에 우리는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린다. 없을 때의 간절함을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잊고 산다. 사람과 물건, 모든 생명체에 대해 애정어린 눈길을 던지고 말을 건네던 그때의 감성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심각한 사회문제를 <심스 태백>은 매우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게 해결하고 있다. 부러운 재주다. =) 



나무도둑 저학년 동화


[출




글.그림: 올리버 제퍼스/ 옮김: 황인빈

글.그림: 올리버 제퍼스

<아일랜드 도서 협회상>외 각종 그림책 상을 석권한 작가.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로 국내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린 올리버 제퍼스의 신작



어느 날부터인가 나무들이 사라져간다. 숲속 친구들은 누가 나무를 베어 가는지 범인을 찾기 위해 단서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과연 나무도둑은 누구일까•_ •?!!
 



줄거리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 꿈인 곰은 밤마다 나무를 베어 종이를 가공하고, 이 종이로 비행기를 접어 날리기 연습을 한다. 숲속 친구들은 누가 나무를 베어 가는지 범인을 잡기 위해 단서를 찾다가 범행현장에서 종이 비행기를 발견! 어느날 순록이 종이비행기를 곰이 던지는 걸 목격했다고 일러준다. 결국 곰은 경찰서에 잡혀 간다. 곰의 사정을 들은 숲속 친구들은 그가 죄를 받는 대신 나무를 심도록 배려를 하고, 곰이 가공했던 작은 종이들로 곰이 타고 결승전까지 날아갈 수 있는 튼튼하고 빠른 종이 비행기를 만들어 선물한다. 



생각하기 

꿈과 목표를 향한 나의 행동으로 다른 이가 피해를 보고 있진 않은가? 
이 작품에는 악역이 없다. 자칫 곰을 악역으로 볼 수 있겠지만, 곰은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 열성적이었고 노력했던 것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앞만보고 달려왔는데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니 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던 것이다. (물론, 순수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이들도 있지만 이 동화와는 다소 괴리감이 있음으로 생략!) 고의적으로 한 일이 아닌 것이 꼭 나의 의도로 발생한 것 같을 때 드는 당혹감, 자책감.. 그런 혼란기에 달래주고, 설명해주고, 바로 잡아주는 이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곰 주변에는 그를 헤아릴 줄 아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곰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관계'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으며 '소통'은 어떤 식으로 실천되고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어린이의 삶에도, 어른의 삶에도 적용이 되는 멋진 한방! 그런 동화이다.

1